한경애(디디,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연구교수)

0.운동현장에 대한 연구가 아닌, 운동이 수행하는 공동연구(co-research)

<aside> 🪄 공동연구자는 누구인가? 투사(militants)이다. 모든 투사는 공동연구를 수행한다. 즉, 공동연구는 명백하게 정치적인 것이며, 투쟁의 조직이다. 그것은 과학적이지만, 중립적 과학이라는 환상을 거부하고 과학과 지식이 전장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동시에 공동연구는 방법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연구의 대상은 자본주의적 관계라는 증오의 대상이다. 공동연구는 주체화의 과정이고, 조직화이며, 균열이다. 지식의 생산은 곧장 자율성의 생산이다. (Gigi Roggero,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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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연구(co-research)는 '주체(연구자)와 객체(피조사자)의 전통적인 관계'를 타파한다는 점에서 종종 실행연구(action research)와 비교되지만 이 둘은 다르다. 실행연구는 아카데미아의 연구 방법론으로서 보다 매뉴얼적인 접근을 취하는 방법론이다. 실행연구의 뿌리는 과학이나 교육 분야에 있으며, “계획, 실천, 모니터링, 발견”의 각 단계가 나선형으로 되먹임 하는 프로세스로 구성된다. 한편, 공동연구는 정치적 투쟁이며, 또 정치적 투쟁을 통한 조직화의 노력 전반을 의미한다(Roggero, 2014). 그것은 이탈리아의 오페라이스모의 전통에서도, 한국의 사회운동 유산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70년대 학생들이, 혹은 공장에서 막 일을 시작한 도시빈민 노동자가 스터디에 참여했다가 활동가로 거듭나고, 그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다시 운동론을 써나갔듯이 공동 연구는 보다 내발적인 연구의 형태 혹은, 운동 그 자체와 분리될 수 없는 것, 즉 운동의 유기적이고 직관적인 프로세스이다. 사람들이 지배적 권력에 이의를 제기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곳 어디서나 공동연구가 일어난다. 공동연구는 운동을 확장하기 위한 지식의 생산과정이다. 어떤 운동 현장에서도 활동가들은 함께 글을 읽고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험하고 되먹이며 (즉, 운동과 연구를 횡단하며) 공동 연구를 수행한다.

  1. 공동연구로서의 빈집

한국 최초의 공동주거(co-housing) 실험으로 알려진 빈집(2008-2018)은, 조직 활동가로 단체에 근무하고 퇴근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방식의 운동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반자본주의적, 혹은 비자본주의적으로 꾸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지 고민했던 (이제는 늙은) 젊은이들의 실험이었다. 가능하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율적인 활동과 상호 돌봄을 통해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삶과 다른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시도는 자본주의적인 “집”과 “일/노동”을 바꿔내는 여러 가지 실험, 공간과 담론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당시 집안 사정상 임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자발적 가난뱅이”로서 살아가는 빈집 친구들이 너무너무 부러웠고, 나도 기어코 풀타임으로 빈집에서 살아보겠다는 욕망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나라 돈을 받아서 빈집에서 필드워크를 하겠다는 허랑방탕한 기획). 6개월간의 빈집살이는 즐거움도 고통도 감동도 강렬한 것이었고, 그 희노애락은 어찌어찌 분석되어 석사논문이 되었다. 즉, 빈집을 “연구”한 나는 연구자로서 빈집에 들어갔다기보다 애당초 빈집의 친구였고, 빈집의 일부였으며, 빈집에서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지지고 볶은 빈집 사람이었다. 당시 우리들은 금융을 주체화의 장소로 파악하며 같이 공부하고 있었고, (빈집에서 만든 대안은행) 빈고를 어떻게 하면 확장할 수 있을지, 왜 반-자본을 말하는 사람들이 빈고에 가입하지 않는 것인지 (분통!) 고민했다. 참여관찰이라는 거드름 빼는 단어로는 절대 설명되지 않는 나의 빈집 연구 방법론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할 때 발견한 것이 바로 지지 로게로의 “공동연구의 재발명을 위하여”라는 논문이다.

<aside> 🪄 공동연구는 이론이 실천이 되고 실천이 이론이 되는 중간지대에서 벌어진다. 담론을 실천으로 번역하고 도입하기. 동시에 투쟁의 시작지점, 주체화의 장소에서 담론을 바꾸고 정교화하기.

자유로운 해방공간(free autonomous zones)라는 이데올로기나 작은 커뮤니티의 미시정치로는 자본의 위계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포디즘 시기 공동연구의 주체는 대중 노동자였음. 생산양식, 노동과 주체성의 변화 속에서 공동연구를 다시 생각하고 재발명해야 할 필요성! (도시 전체가 공장이 되고 전사회적으로 생산과 착취가 일어날 때 공동연구의 시공간은 어디인가?)

-로게로(2014)의 공동연구의 재발명을 위하여 중 발췌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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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는 빈집에서 필드를 하고 논문을 쓴 과정이야말로 로게로가 말하는 공동연구였는데, 그것은 빈집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빈집과 함께 연구하며, 빈집의 공통감각을 함께 만들어간 빈집의 일부였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1. 서로 다른 현장들 간의 공동연구는 어떻게 가능한가?

빈집에 있는 동안, 빈집과 비슷한 대안공간/삶/운동/프로젝트가 도쿄와 베이징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나는 이 운동들을 자본과 국가가 강요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대안적 관계와 공간 (즉, 커먼즈)를 만드는 프리카리아트(불안정계급)의 운동으로 보고, 특히 이들이 어떻게 자본주의적인 개념/실천과 다른 일과 집을 구성해 왔는지, 이 실험들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보고 싶었다.

곧장 두 가지 곤란에 부딪친다. 빈집 외의 공간의 주체들에게 있어 나는 함께 운동하고 연구해온 동료가 아닌, 이방인이었다. 게다가, 여러 현장을 비교 연구하는 연구자에게 있어 공동연구는 어떻게 가능한가? 스스로의 위치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며 실행한 몇 번의 파일럿 연구에서, 나는 각 도시들의 프리카리아트가 대안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방식이나 정동을 둘러싼 중요한 차이들을 감지하기 시작하게 된다. 반자본주의, 공산주의, 공동체, 노동, 시민 등 비슷한 언어를 사용할 경우에도 각가의 그룹이 갖는 입장이나 뉘앙스는 달랐고, 각 현장의 배경에는 훨씬 길고 복잡한 사회운동의 역사적 경로와 비판적 담론의 맥락이 존재했다. 같은 사회적 맥락 내의 운동들 간에서조차 세대와 젠더, 또 다른 여러 가지 정체성에 기반 한 감각의 차이들은 점점 더 근본적인 불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금 정리해서 이야기해보자. 빈집이 그러했듯이, 어떤 운동의 현장에서도 활동가들은 집합적 직접행동, 혹은 가치투쟁을 통해, 주류적인 시공간과 다른 시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자본과 국가의 무거운 중력에서 비껴난 공통감각, 대안적인 시공간을 만들고 확산하기 위해, 활동가들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주류 사회와 대결하며 운동의 내부에서 만들어내는 공통감각이란, 굉장히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강렬한 특이점들이기도 하다. 한편, 각각의 운동이 만들어 온 상황적 공통감각은 좁은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 공통의 개념을 창출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운동과 소통되어야하고, 그것을 위해 번역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역사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제도적 맥락에 기초한 운동들이 만들어온 사고와 실천, 서로 다른 감성 사이에 존재하는 확고한 경계선과 단절들 사이에서 번역은 가능한가? 특이점으로서의 운동들은 어떻게 작은 규모의 “자유로운 해방공간”을 넘어서는 공통개념을 구성하고 서로 연결되는 정치의 과정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와중에 연구자는 어떻게 연구자로서의 특이성, 혹은 단독성을 부인하지 않은 채로 이 운동들의 과정을, 로게로의 표현을 따르자면, 현존하는 위계들을 파괴하는 “공동의 프로세스로 번역”할 수 있을까?)

  1. 두 개의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