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가혜(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내포를 아시나요? 대전에 있던 충남도청이 옮겨오며 만들어진, 홍성군과 예산군에 걸쳐있는 신도시. 도청과 교육청과 경찰청, 또 그 산하기관들이 들어와 있고, 몇 년 째 뚝딱뚝딱 공사가 계속되지만 여전히 빈 땅들이 널려있는 곳.
지금은 신도시가 먼저 떠오르지만 내포는 더 넓은 지역입니다. 당진, 서산, 예산, 홍성, 더 넓게는 아산과 태안, 보령까지. 서해의 바닷길이 들어오던 곳. 충남의 내륙으로 길게 연결된 물길을 따라 포구들이 들어서 있고, 바닷길을 타고 흘러온 천주교가 뿌리를 내렸던 ‘조선 천주교의 못자리’. 가장 많은 성지와 순교자가 있고 교우촌의 흔적이 있는 지역.
내포-충남의 천주교는 서학이나 신문화의 수용운동과는 조금 다르게, 하층민 중심의 민중 종교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천주교인이 아니지만, 우리지역을 설명할 때 늘 빼놓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멍청도라는 오명에 발끈하며, 은은하되 치열한 지역이라고!!!!! 아, 물론 동학혁명과 유관순열사도 빼놓지 않습니다(...)
내포신도시의 구석, 작은 공동사무실에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있습니다. 충남지역의 31개 조직이 가입되어 있는 상설 연대조직입니다. 오랜 기간 상근자 없는 연대체의 숙명(?)인 듯, 때에 따라 크고 작은 부침을 겪어옵니다. 그러다 2018년 재건 총회를 통해 극적으로 부활, 급기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해 지역 연대회의로는 최초로 상근 사무처를 설치하기에 이릅니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으로는 회원단체로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농민회 도연맹이 함께한다는 것.
충남연대회의의 유일한 상근자로, 지역 시민사회를 이야기해야 할 때면 필수요소처럼 나가게 되지만, 광역단위의 활동을 한 지는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세대교체가 더딘 탓에 부끄럽게도 여전히 막내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난 이야기들은 주워듣거나, 자료를 뒤지며 습득하거나, 혼자서 은밀히 파악한 야사들일 뿐.. 그런 저에게 주어진 주제가 ‘충남에서의 시민운동 흐름 속에서 현장연구의 필요성’입니다. 지역 시민운동의 흐름을 제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이것 또한 정말 필요한 연구과제네요.
오랜 고민 끝에, 10여년의 경험들 속 마음에 남았던 장면들을 풀어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우리 지역의 시민사회운동의 흐름 포개어지길 바라면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
충남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수 년 전, 한 영역에서 나름의 지위와 권위를 가지고 있던 인물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누군가의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피해자들이 모였습니다. 한 둘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피해자들의 의사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커다랗게 공론화되지는 않았으나, 그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조치가 미흡하다는 이야기들이 산발적으로 나왔으나, 피해자들이 문제제기 하지 않은 공식적인 결정이니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몇 년 후 동일한 인물이 또 가해자로 지목됐습니다. 지난 수습 과정과 결과가 다시 소환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파가 길었습니다. 떠나는 청년 활동가들과 물러나는 선배 활동가들이 있었습니다. 서로 실망과 섭섭함을 이야기했고,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그 사건의 여파가 본질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세대갈등’이라는 납작한 말들로 설명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몇 년 후 제가 속해있는 또 다른 조직에서 선후배 관계에서의 언어폭력이 제법 커다란 사건이 되었습니다. 지난한 과정이 있었고 또 커다란 상처가 남았습니다. 관련되었던 사람들이 조직을 떠나고, 실망과 섭섭함 같은 말들이 또 다시 오고갔습니다. 그 공허한 틈을 또다시 ‘세대갈등’이라는 납작한 말이 채웠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대체로, 가해자와 피해당사자를 넘어 그 곁에 섰던 사람들과 문제해결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적극적으로 문제해결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이요, 의견을 내거나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물음을 던지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됩니다.
원치 않아도, 예기치 않게 문제들은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까지도 계속해서 그대로 겪어야만 하는 걸까요? 세대라는 말 속에 숨어버린 위계, 이해관계, 합의, 절차 같은 말들을 떠올려봅니다.
두 번째 사건의 공식적 과정이 끝난 이듬해, 조직의 총회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한 백서를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사건이었고 어떤 절차를 거쳐 처리했는지, 그 속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를 담은 백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만, 그 해 지역에서 또 다른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그 백서와 과정이 참고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문제, 공동체의 대응과 다짐을 담은 더 많은 기록이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시민사회조직에서의 피해대응 매뉴얼, 조직문화 진단 도구 같은 좋은 길잡이가 되는 현장지식들도 절실합니다.
변방의 변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충남은 석탄화력발전소 밀집지역입니다. 발전소 주변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으로 전기를 나르는 송전선로 때문에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얼마 전 충남연구원에서 공개한 ‘석탄화력발전소 주변지역 주민건강영향조사(1~5차년도)’ 결과에 따르면 석탄화력 주변 지역 주민들의 암연령표준화발생비가 충남 전체에 비해 남성은 40.3%, 여성은 23.4%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높은 대기오염농도와 분진피해 등으로도 이미 예견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발전소와 송전선 뿐 만이 아닙니다. 농촌으로 몰려드는 폐기물, 송전탑, 축사, 산업단지 등, 환경오염시설들로 마을공동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마을의 환경을 해칠 뿐만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불법폐기물, 골프장, 축사, 지방산업단지, 모노레일. 지난 한해만도 지역뉴스에는 수많은 지역의 투쟁소식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