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원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부센터장)
1) ‘투사(militant)’
- 투사는 골방에서 고독한 사색을 통해 자기 세계관을 구축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받아드리는 자가 아니라, 타자와의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지와 세계관을 공동체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구현하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타자와의 기존 관계에 개입, 관여, 참여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 투사는 갈등과 비난을 인내하고, 저항을 조직하고, 자신의 의지와 세계관을 타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
- 따라서, 투사는 분리하는 자이자, 연대하는 자이며, 분노하는 자이자, 환대하는 자이고, 파괴하는 자이자 창조하는 자이다
- 투사는 자신의 의지와 세계관이 왜 타자와 공유되고, 타자의 삶에도 투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사고해야 하며, 이 공유와 투영의 과정이 민주적인지 혹은 폭력적인지, 그리고 일방적이고 계몽주의적인지 혹은 자신의 변화를 포함한 새로운 정체성과 주체의 탄생의 가능성을 민주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인지 쉬지 않고 감시해야 한다.
- 투사는 헤게모니적 실천 즉 자신의 특수한 목표와 과업이 타자에게도 그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보편화 작업, 일종의 신화와 사회적 상상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 어떤 투사는 자신의 특수한 목표와 요구가 실현되면 (예를 들어, 임금인상, 정부 예산 계획 수정, 특정한 권리 보장 법/제도 개선 등), 투사로서의 정체성과 실천 활동을 중단되고 투사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투사는 그런 회복된 삶을 바라며, 그래야 하는 현실의 무거움이 있다.
- 하지만, 투사로서 자신의 실천이 더 일반적이고 급진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투쟁에 담긴 한 편의 사건이자 조각이라고 인지하게 되면, 적어도 두 가지에 대한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 하나는 자신의 실천이 그 자체로 전체가 아니라 더 일반적이고 급진적인 목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그 일반적이고 급진적인 목표는 어떻게 주어졌는가? 투사 자신의 실천 과정에서 깨닫게 된 다른 투쟁과 실천과의 ‘유사성’, ‘친밀성’, ‘연대의 필요성’으로부터 그 목표가 주어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의지와 세계관에 확고히 자리잡은 어떤 ‘보편성’과 ‘필연성’ 때문인가?
- 다른 하나는, 첫 번째 판단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졌는가에 따라, 현재 투사로서 자신의 실천이 얼마나 정당하고 적절한가에 대한 질문과 관련된 것이다. 만일 첫 번째 판단의 결론이 유사성, 친밀성, 연대의 필요성과 더 관련된 것이라면, 더 일반적이고 급진적인 목표 실현을 위한 정치적 주체는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결정해 가는 새로운 상상물이자 정치적 결과가 될 것이다. 반면 첫 번째 판단의 결론이 이미 주어진 보편성과 필연성을 더 강조한다면, 자신의 실천 속에 이미 확정된 정치적 주체성을 타자와 공유하고 확장하는 방식(무너지거나 부정되어서는 안되는)이 주요한 실천 방식이 될 것이다.
2) 현장(field)
- 현장은 단지 어떤 이상 현상이나 징후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장소가 아니라, 일련의 사건이 반복 혹은 연결되서 발생하는 공간이자 사건의 복합체이다. 따라서, 현장은 단지 지리적인 위치성만이 아니라, 시공간의 변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세력과 집단들 사이 갈등을 둘러싸면서 나타나는 역학(dynamics) 그 자체와 역학의 파장이다.
- 따라서 현장은 특정한 장소와 그 장소가 규정하는 주체위치(subject-position)만이 아니라, ‘현장’이 인정하거나,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공간적 범위, 주체위치, 사용되는 언어와 지식과 상징체계/신호와 윤리, 행동의 동선 그 자체이자, 이 모든 것들을 규정하는 지배 언어와 법/제도, 권력관계, 헤게모니 투쟁 등이다. 따라서, ‘현장’은 특수한 헤게모니 구성체이며, 담론적 실천 그 자체이다.
-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발생하는 지하철 역사, 공공성과 도시에 대한 권리에 급진적 질문을 던진 경의선 공유지 투쟁, 물리적 장소성을 벗어나지 못한 서울혁신파크, 민주주의 정치로 확장하지 못한 마을 공동체 운동 / NPO 지원센터,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낙원구 행복동 등에서 발생하는 갈등, 위기, 징후 등을 설명하는 지식과 언어는 어떻게 형되었고, 어떻게 확산 또는 소멸, 합법 또는 금기가 되는가?
- 투사를 환대하는 현장, 투사를 배제하는 현장, 투사가 없는 현장, 현장 없는 투사, 이런 것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3) 연구(research)
- 연구는 ‘세계관’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연구는 특수한 세계관을 보편적인 세계관으로 바꿔나가는데 기여하기도 하고, 연구자 자신의 세계관을 확증하기도 하고, 그것을 뒤바꿔버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