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발표글은 기존 시민사회운동조직 중심의 사회문제 해결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직접 사회 문제 해결의 주체로 등장한 시민사회 생태계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즉 민주화 이후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진 정치사회적 환경과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촛불시민으로 상징되는 자율적 시민주체들이 자신들의 현장지식을 활용하여 직접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동시에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학습과 경험을 넓혀 새로운 현장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을 희망제작소가 진행하고 있는 ‘온갖 문제 연구’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현장지식의 특성을 파악하였고, 이러한 변화된 지식 환경 속에서, 다시말해 시민들이 생산한 현장지식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발표글이 후반부에 분석한 현장지식의 실천/발전 방식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표글은 시민들이 생산하는 현장지식의 특성을 시민들이 제출한 연구제안서를 연구주제, 연구방법, 연구결과물로 각기 나누어 분석하였다. 먼저 연구주제에서의 특성은 당사자 자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투명인간에 대한 주제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이해를 시도하려는 점, 대안적 삶을 작게 실험해보려는 점 등이다. 연구방법에서의 특성은 현장과 밀착한 조사 방법을 활용한다는 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동료, 시민, 이웃, 활동가 간의 교류와 협력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 페이퍼 연구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를 직접 실험해보고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 연구 과정에 포함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연구 결과물의 특성은 보고서 형태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쓸모있는 실용적인 형태(예를들어 영상, 상품, 시스템, 지표, 매뉴얼 등)라는 점, 연구 과정 그 자체가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후 이러한 활동들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지(발표글 표현으로는 ‘현장지식을 어떻게 실천/구현해 나가는지’)를 분석하였는데, 이는 당사자가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실천하는 방식과 (다양한 형태의) 중간지원조직의 지원을 활용하여 실천하는 방식으로 나누어 제시되었다. 후자의 지원 방식으로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교류•소통•협력하면서 문제를 발전시키고 실천하도록 온•오프 라인 플랫폼/커뮤니티 공간을 지원하는 것과 현장지식을 비즈니스 모델로 구체화하여 창업으로의 연결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현장지식은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발전하며, 현장지식이 아이디어 실험 단계에서 고도화 단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업화(영리든 비영리든)단계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사업화를 위해서는 다른 시민들과 교류•소통•협력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기능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소통할 수 있고 나아가 함께 의기투합할 수 있는 동료(실행팀)를 만날 수 있으며, 실행을 위한 다양한 재정적•인적자원(전문인력, 지역자원)이 연결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판을 시민사회가 깔아주고 이 과정에서 생산된 현장지식을 기록(아카이빙)하고 공유/확산하는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할의 참고 사례로는 또 다른 발표글인 ‘노회찬재단’이 한겨레 및 프레시안과 함께 우리사회에 소외된 투명인간의 목소리와 색을 기록하고 공유•확산하는 작업이 있으며, 지역 기반으로는 은평시민사회의 ‘은평상상컨퍼런스’와 마포시민사회의 ‘마포로컬리스트컨퍼런스’와 같이 동료를 만나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고 실행팀을 꾸리며 다양한 물적/인적자원(지역단체, 지역주민, 행정, 기업)이 연결되고 이 과정에서 생산된 다양한 현장지식들을 기록•공유하고 있는 지역시민사회 플랫폼을 들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토론자의 문제의식은 이렇게 생산된 현장지식의 일반화의 가능성, 호환성의 가능성이다. 흔히 현장사례들이 그렇듯 현장지식은 구체성•특수성을 갖는다. 때문에 이 현장에서 쓸모있는 지식이 다른 현장에서는 쓸모없는 지식일 수도 있다. 특히 지역은 여성, 환경, 복지 등과 같이 하나의 영역으로 묶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며 지역현장의 경우는 지역별 차이와 특수성이 매우 강하다. 사업이나 활동의 초기에는 타 지역이나 외국 사례가 유용한 지식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활동이 발전하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지식 이전인 현장정보나 현장데이터 또는 지식을 넘어서 일반성(원리)을 담보하는 현장지혜의 수준이 실제로 더 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지식의 생산/발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는 희망제작소가 고민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시민의 현장지식(또는 현장지혜) 생산/발전 지원인가? 시민의 현장활동(실천활동) 지원인가?를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장활동의 지원이 현장지식 지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현장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필요하다. 실제 시민의 연구제안서를 통해 분석한 시민의 현장지식의 특성은 자율적 시민의 사회참여활동(공익활동)의 특성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