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현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현장의 의미

현장연구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물음의 해명을 위해 먼저 연구 일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말해 연구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세계에 대한 혹은 문제가 되는 사태에 대한 새로운 이해, 새로운 분별, 새로운 앎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연구의 의미는 연구가 원리적으로 위와 같은 새로운 앎·분별·이해를 가져온다는 데 있다. 혁신성으로 불렸든 창조성으로 불렸든 이러한 새로운 이해·분별·앎이 전통적으로도 빼어난 연구가 가지는 특징으로 이해되어왔다고 하더라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본래 연구의 의미는 기존 지식이 참임을 다시금 그저 확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사태에 대한 새로운 분별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앎, 지식을 생산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실 어떤 연구자도 진공에서 작업하지 않는다. 지식은 본래 공통적인 것(the common), 커먼즈(commons)이며 따라서 문제가 되는 사태에 대한 새로운 분별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앎, 지식 역시 커먼즈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모든 지식은 기존 지식에 입각하여 그것에 새로운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 공통적인 것으로서의 기존 지식에 입각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덧붙임으로써 확장되고 심화되는 새로운 공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지식에 대한 이해와 비판, 혁신의 과정을 이러한 지식을 생산한 연구자들 사이의 일종의 소통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면, 지식 생산은 연구자들 사이의 사회적 협동, 협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홀로 연구하더라도 지식 생산이 협력의 과정이고 이렇게 생산된 지식이 협력의 산물인 공통적인 것, 커먼즈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커먼즈로서의 지식, 지식 커먼즈가 공통적인 것으로서의 기존 지식과, 협력에 입각하여 새로운 공통적인 것, 새로운 지식으로 생산되는 데 있어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문제가 되는 사태에 대한 연구자의 새로운 물음 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물음 제기로부터 기존 지식의 의미가 그리고 협력의 방식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물음 제기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원리적으로 이는 기존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이해의 한계를 실험하는 사태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장연구에서의 현장은 본래 이와 같이 기존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이해의 한계를 실험하는 사태들이 존재하는 장, 그에 대한 적실한 이해를 위해 새로운 물음이 제기되어야 하는 장이라고 해야 될지 모른다. 다시 말해 기존 지식을 단순히 적용하는 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새로운 물음을 제기하게 만드는 물음제기의 장이 본래 현장의 의미, 연구자에게 현장이 가지는 우선적·일차적 의미라고 해야 될지 모른다.

새로운 물음 제기의 필요

물론 새로운 물음 제기가 필요한 것은 현장이 봉착한 문제를 이해하고 현장에서 전개되는 실천들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현장이 봉착한 문제가 기존 지식을 단순히 적용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들 역시 이러한 적용을 통해 쉽사리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현장은 그에 대한 적실한 이해를 위해 새로운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없는 공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물음 제기는 현장을 단순히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더 현장이 봉착한 문제를 이해하고 현장에서 전개되는 실천들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연구자에게 이러한 물음 제기는 현장이 봉착한 문제를 연구자가 자신의 문제로서 고민하는 동시에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현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기존 실천들의 의미와 한계 등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면 가능할 수 없다. 유의할 것은 기존 실천들의 의미와 한계 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성찰로부터 실천들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더라도, 이것이 곧 현장이 봉착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어떤 대안, 대안적 실천을 제시하는 것이 연구자의 과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연구자가 어떤 대안을 쉽사리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 허구적 관념일 것이다. 대안은 쉽사리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더 현장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활동가만큼 대안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 현장연구의 의미가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것일 뿐 아니라 위험한 것일 수 있다. 현장에서 실제로 활동하면서 현장이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적 실천을 모색해온 활동가보다 연구자가 어떻게 더 적실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연구자가 이러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일뿐더러 그 대안이 현장과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도 있다.

물론 현장이 봉착한 문제를 잘 진단하는 것은 필요하며 이러한 진단은 원리적으로는 현장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이러한 진단이 우선적으로 유사한 현장을 분석한 기존 지식을 이해하고 이를 적용하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이와 같이 기존 지식을 이해·적용하는 것은 분명 연구자가 수행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맥락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적용을 통해 해당 현장이 봉착한, 해당 현장에 특유한 문제에 대한 충분하고 적실한 이해가 주어질 수는 없으며 나아가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들 역시 단순히 기존 지식을 적용한다고 제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신규 공항 건설 현장의 사례

예컨대 제주도, 가덕도를 포함하여 신규 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새만금, 울릉도, 흑산도, 대구·경북에서 각 지역 현장에서 이루어질 공항 건설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지는지는 과거에 이루어진 공항 건설 문제를 분석한 기존 지식을 단순히 적용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제주 제2공항 건설의 문제를 분석한 기존 지식을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단순히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나아가 이러한 단순 적용을 통해서는 가덕도라는 지역 현장에 특유한 문제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 특유한 문제를 이해하고 이러한 이해에 입각하여 현장이 봉착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적 실천을 모색하기 위하여 유사한 현장을 분석한 기존 지식을 적용하는 것은 한편에서는 기존 지식을 단순히 적용하는 것으로는 해당 현장에 대한 충분하고 적실한 이해가 주어질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각 현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장에, 예컨대 신규 공항 건설 현장으로서, 어떤 공통성이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통성에 대한 확인은 때로는 대안적 실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예컨대 제주 제2공항 건설 사업의 경우 국토부가 추진하는 건설 계획을 실질적으로 환영하고 지원해온 당시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2022년 5월 국토부 장관으로 취임하게 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운동 주체들의 대책 모임은, 소수의 인원이기는 했으나, 신규 건설 공항 반대운동을 제주 차원이 아닌 전국 단위에서 전개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제2공항 반대운동의 주체들이 2022년 6월 1일 열리는 지방선거를 위해 제정·시행된 ‘가덕도신공항건설을위한특별법’에 따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는 상황 속에서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주체들과 연결되어 제주 제2공항, 가덕도 신공항을 포함한 신규 공항 건설의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신공항저지 반자본생명해방전선’을 결성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물론 신공항저지 반자본생명해방전선은 소수의 인원이 결성한 소규모 조직이지만 생각해볼 것은 기존의 유사한 현장에서 축적된 지식, 이 현장을 분석하고 이러한 분석에 입각하여 이 현장이 봉착한 문제에 대응하려는 실천의 밑바탕이 된 지식이 새로운 현장이 봉착한 유사한 문제에 대응하려는 실천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색의 자리에는 각 현장에서 활동해온 활동가와 함께 연구자도 함께 했었고 활동가와 함께 논의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