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정책팀장)
낯선 질문
투사-연구자라는 용어는 뭔가 까슬까슬하다. 해당 개념과 근친성을 보이는 것은 사르트르와 같은 실천적 지식의 자기 정당화로서 앙가주망이라는 것이나 안토니오 그람시가 진지전의 비유를 통해서 채택한 헤게모니 투쟁의 당사자로서 유기적 지식인일 것이다. 알다시피 앙가주망이나 유기적 지식인은 ‘전체를 이르는 개념’이 아니라 지식의 특정한 행위나 양태를 일컫는 말이다. 즉 질문은 지식인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투사-연구자라는 말은, 실제 발제자들의 표현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방점이 투사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다. 마치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기존의 익숙한 대로 관행적으로 싸우지 말고 좀 더 분석하고 살펴보면서 실천하라는 요청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투자-연구자라는 말을 그것이 있다 치고 이야기를 해보자, 라고 손쉽게 넘어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어쩌면 앙가주망이 아닌, 알리바이로서 ‘나도 어느 정도는 현장에 대해 알고 있지’라는 말을 하기 위한 개념으로서 그러니까 연구자의 자기 정당화로서 여겨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질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현장이라는 말
현장이라는 말은 특권화를 용이하게 만드는 개념이다. 사실 현장 중심성이라는 건 현장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인식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법이 아닐 텐데도, 한국에서는 현장 중심성이라는 걸 구체적인 문제 해결적 접근방법이 아니라 문제의 ‘당사자’와 친밀성을 유지하는 상담 혹은 컨설턴트의 역할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현장에 있는 당사자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일 수 있지만 반드시 그 느낌이 판단의 기준일 필요는 없다. 쟁점은 적대적 관계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편에서도 생긴다. 따라서 토론을 통해서 전략을 논의하고 그것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현장에서의 동등성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소위 현장 중심성이 당사자 우선주의와 구분되지 않는 발상은 극히 최근례의 일이다. 소위 문화인류학적 접근법, 즉 특정한 당사자의 발화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과 사회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수단을 접합하거나 동원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경제적 보상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 되는 도시개발 과정에서의 갈등은 단 한 번의 해결이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쌓아나가서 결국엔 넘쳐흐르게 만드는 시도들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보의 공유와 공동 판단의 가능성은 현장과 현장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매우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은 모두 해당 현장을 매우 특수한 현장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결국 특정 현장의 특수성을 중심으로 구축하는 것은 연구자의 특수성 때문이 아닐까, 이를테면 심한별 선생이 말하는 청계천 사례가 그렇다). 그래서 이곳과 저곳의 경험이 좀 더 다른 집단적 경험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저것은 저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중요하게 여기고 마는 형식적인 평등주의적 만족감으로 휘발된다.
지식인의 일과 활동가의 일
기본적으로 연구 작업에 본령을 두고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노골적으로 말하면 고등교육기관의 연계 속에서 자기 활동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연구자로서 지식인의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제도적 정당성의 문제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권위를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한 역할이 있을 수 있다. 반면 활동가들은 연구자들의 연구 작업의 결과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관행적이고 내면화된 매뉴얼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활동가의 윤리 혹은 일에 해당하는 요소일 수 있다. 활동가의 활동 목표는 문제해결이나 당파적인 가치의 확산 혹은 좀 더 근본적인 사회 시스템의 변화일 수 있다. 지식인의 동기가 새로운 연구주제의 발견이라면 활동가의 동기는 최소한의 변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실마리다. 당연히 지식인이자 활동가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두 개의 기능을 수행하는 역량이 있다는 것과 ‘나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다’라는 자기 인식은 전혀 다른 문제다. 활동가는 이론적으로 맞지 않아도 경험적 당파성을 지지할 수 있다. 이런 정세적 판단이라는 것은 학문의 양심이나 지식의 객관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학문과 지식의 영향력을 통해서 활동가의 당파성을 재단하게 되면, 즉 상황의 정세적 구속력을 평면화 시켜 버리면 본질상 기득권을 강화하는 편향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를테면 최근 SNS 상에 논란이 되었던 ‘좋은 불평등’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최병천 씨와 한국에서 중요한 사회운동단체를 대표했던 한지원 씨의 사례는 이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연구자나 활동가들이 지식과 연구의 결과를 통해서 자신의 당파성을 희석시키거나 혹은 부정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에, 지식인과 활동가라는 결합은 오히려 엄청난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다시, 투사-연구자
그래서 ‘어떤 존재’가 새로 생겨났는데 그에 대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생긴 것인가, 아니면 투사-연구자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개입해야 할 사회적 실천 영역이 생긴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전자라면 그것은 새로운 방법론이어도 좋고 아카데믹 영역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분과 체계여도 나쁘지 않다(그런 점에서 디디가 말하는 공동연구는 이런 분과체계의 제안과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 또한 투쟁의 언어를 연결한다고 했을 때 그걸 누구와 누구를 매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그것이 미디어가 아닌 연구자가 해야하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후자라면, 그러니까 지금의 사회적 문제는 연구라는 사회적 행위와 연결되어 있는 투사적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상황 판단이 있는 것이라면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문제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과학적 지식이 현실의 구체적인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과학적 지식과 방법론이 새로운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실천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면 좀 더 구체적인 토론이 가능해질 것 같다. 사회적 실천에 대한 좀 더 구성주의적 접근법이, 그러니까 지식과 현실 그리고 지향하는 세계관과의 결합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기존 사회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일방적인 유보나 판단 중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밀어붙일 수 있는 당파성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소위 사회적 논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90년 말에 자유주의적 지식운동 중 하나로 나타났던 실명비판과 사회적 영향력의 재분배(제 몫 찾아 주기라는 형태로 나타난)는 다양한 형태로 사회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논쟁 이후 사회적 논쟁은 정파적 논쟁으로 휘발되기 시작했고 이 편이냐 저 편이냐는 일차적인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투사-연구자라 할 때, 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누구를 향해서 ‘사회적 적대’ 관계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그렇게 보면 역시 투사-연구자라는 개념은 여전히 까슬까슬한 개념이다.
투사적 실천
정당 조직에서 밀리턴트는 굉장히 익숙한 개념이다. 순화하면 열성당원이고 역사적 쓰임으로 따지면 과격당원이 된다. 사회적 실천을 구체적인 전투 과정으로 이해하면서 승과 패를 중심으로 사회적 실천의 성패를 구분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타협적인 원칙을 고수하는 양태가 정당 내 밀리턴트의 특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 노동당 내 비타협적인 좌파그룹을 가리키는 말로 밀리턴트 그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이탈리아의 자율주의 경향에서는 생디칼리스트 경향성을 스스로 밀리턴트라고 불렀다. 이런 역사적 용례를 염두에 둔다면, 밀리턴트를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사용하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집단이나 개인이 아니라 어떤 행위를 ‘투사적’이라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당파성이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이후 이념의 강제적인 소멸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는 탈이념이라는 것이 마치 엄청난 유행처럼 번졌다. 이념이 없는 당파성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현 상황에서 밀리턴트의 필요성은 어디에 기인하고 있을까. 나는 그것이 행동 자체의 특수한 형식, 그러니까 점거나 직접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기준의 고정성에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강력하고 비타협적인 기준은 그것을 향하는 경로의 유연성을 보장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투사-연구자라는 개념에서 다시 투사를 따로 떼어내서, 그것이 왜 이야기되어야 하는지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투사라고 자기 명명하는 것이라면 구태여 덧붙일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투사적 실천의 사회적 필요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 이야기부터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승원 선생의 발제문 끝에 ‘민주주의 급진화’라고 말할 때 그게 왜 투사-연구자의 질문과 이어져야 하는지 궁금증이 생긴다(지식의 민주화에 투사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왜?). [끝]